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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기록

편안함이라는 독 (self-reflection)

Ellina Kwon(엘리나) 2024. 1. 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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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 

 

편안함은 독이다. 나를 지하세계로 끌어내리는 중력과도 같은 것이다. 

나에게 꽤나 편안한 직장을 놓아버리기로 결정했다. 

급여도 내가 하는 일에 비하면 나쁘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심성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다만, 비전이 없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편안한 딱히 진취적이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지.

 

'치과'라는 공간적, 업무적 환경이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끊임없이 테스트해 왔다. 

전생에 치과랑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건지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연결고리는 스물셋 치위생과 졸업 후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스물넷에 떠났던 미국으로의 '유학'이란 포장지 안에서 개인적인 즐거움을 추구했던 시간들 속에서도 치과와의 끈은 여전히 존재해왔다. 

 

 

 

# 그간의 세월  

 

미국에서 Dental Hygiene과에 입학하기 위해 했던 프리 과목 이수 과정들, 그리고 2013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미국 치과위생과의 전공과정들, 그리고 2014년 가을 보건교육으로 전공을 바꾸고 2016년 봄 졸업까지, 보건이나 의료 그리고 그 하위카테고리에 있는 치과는 계속 나와 함께 왔다.

 

너무 안일한 20대를 보냈던 탓에 32살에 한국에서 시작한 사회생활은 좌충우돌 난장판이었다. 개인 성향 자체도 자아가 강한 편이었고 미국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바닥을 찍고 돌아온 시점과도 맞물려 도무지 이 세계가 적응도 안되고 혼란스러웠다. 

 

그때 어른들이 왜 하나같이 자격증을 따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스펙도 겨우 졸업한 보건교육학사밖에 없는 내게 기회를 줄리 만무한 냉혹한 세상을 맛보게 되었다. 계속된 서류 탈락에 좌절하고 있던 시점, 예전에 취득한 치과위생사 면허증을 살려 지원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첫 번째로 넣었던 병원에서 단번에 연락이 왔고 취업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때는 나에게 돈을 얼마를 주고 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제부터 돈을 번다는 사실 하나가 중요했었다. 그런 마음과는 달리 첫 직장에서 나는 스케일링을 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려서 네 번째 손가락을 지지하지도 않은 채 공중에서 치석을 제거를 하고 있었다. 임상에서 발휘해야 하는 스킬적인 부분이 어려웠다기보다는 더 큰 문제는 그 일을 하는 목표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번 달에는 스케일링을 마스터해야지 하는 작은 목표 같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내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고, 애써 그려본 미래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다지 예쁘게 포장된 마지막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함께 일했던 병원 사람들이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여 재미있었기에 기억에 남는다. 

 

그 이후 헤드헌터의 연락으로 몇 달의 기다림 끝에 입사하게 된 인비절라인 코리아는 투명교정장치 회사였다. 회사에서 내가 할 업무는 인비절라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고객이 프로그램 활용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그때도 회사에 적응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곳에서 목표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난, 단지 내가 병원이 아닌 '회사'에 입사를 했다는 사실에 취해 앞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입사하는 것에는 전력을 다했지만 내 목표는 거기에서 수명을 다했던 것이다. 입사 후 해야 하는 일들에서는 목적성을 찾지 못하고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결국에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아쉽게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었다. 퇴사의 이유를 나를 괴롭힌 팀장 탓으로 돌릴 수 밖에는 도저히 자기 위안을 할 방법이 없었다. 

 

그 이후 몇몇 병원을 전전긍긍하다가, 자기 능력 개발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야심 차게 에어비앤비도 시작해 보았고, 카페 아르바이트, 쿠팡상하차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당장 눈앞에 작은 이익에 만족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때까지도 난 한국어가 술술 나오지 않는 0개 국어(한국어/영어가 모두 유창하지 않은 상태) 환자였다. 

 

말하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방책으로 내 자취방 근처에 있는 메가스터디 교육에 주말 야간 고객상담팀으로 들어가서 2년간 근무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그동안 책도 틈틈이 읽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이 가지면서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부터 22년, 그리고 23년까지도 내가 목표로 했던 '언어 구사 능력 키우기'는 치과에서 '상담'이라는 업무를 하기 위함이었다. 21년부터는 그래도 꾸준하게 치과에서 근무를 하면서 기회를 보아왔던 것 같다. 내게 상담이라는 것을 하는 기회를 줄까 싶어서 아직 충분하지 않은 임상경력을 쌓으려고 진료실에서 일하면서 기다렸다. 내 마음이 조급했던 걸까 아니면 주변사람들이 보기에 나라는 사람이 그것을 잘할 거라는 생각을 안 했던 걸까 그런 기회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치과에서의 '치료'를 판매하기 위한 상담은 내가 원하는 종류의 상담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 생각의 전환 

 

상담이라는 영역의 정의와 목표는 '상대방에게 말로 영향을 미쳐서 상대방의 심리적 동요를 꾀하여 변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꾸준히 지켜봐 온 나 자신은 어떤 문제에 나서서 아예 해결해 주는 것에 더 흥미를 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결정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극 중 전두광이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내심 누군가 나서서 리드해 줄 사람을 간절히 원한다고.. 

우리는 내심 내 삶의 문제를 혹은 내가 당면한 문제들을 즉각적으로 해결하고 리드해 줄 사람을 원한다. 내가 해결점을 찾고 나가길 원하는 게 아니라 해결사가 짠 하고 나타나서 정답만을 알려주길 원한다. 사실 어떤 모든 것,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그간 익혔던 치과 시스템, 치과 임상적 지식, 영어로 말하기, 언어구사능력, 글쓰기, 신체운동능력, 심리와 인문분야, 구글애드센스 활용 등을 녹여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야 한다. 나는 말과 글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이걸 어떤 기준을 가지고 누가 최고니 아니니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나에게는 이런 재능이 있다. 단순히 포토샵이니, 엠에스오피스 활용 능력이니 하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술능력 말고,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말이다. 거기에 통찰력까지 겸비했다. 이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 그걸 위한 시작은 어디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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